숫자 옆에 빠진 판단의 이유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에 저는 조금 이견이 있습니다. 숫자 자체가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숫자가 남긴 빈칸을 나중의 마음이 채워 넣을 때가 있습니다. 결과를 이미 알고 나면 그때의 판단도 처음부터 그 결과를 향해 있었던 것처럼 보이니까요.
가령 시작 전에 오늘 사용할 금액을 10만 원으로 정했다고 해보겠습니다. 중간에 4만 원이 남았을 때 멈췄고, 기록장에는 ‘10만 원 시작, 6만 원 손실’이라고 적었습니다. 계산은 맞습니다. 그런데 이 기록만으로는 왜 4만 원을 남겼는지 알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일정 금액이 남으면 끝내기로 했을 수도 있고, 집중이 흐트러져서 중단했을 수도 있고, 정해둔 기준은 없었지만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멈췄을 수도 있습니다.
이 차이가 중요한 건 결과를 예쁘게 해석하려는 목적 때문이 아닙니다. 다음에 비슷한 상황을 만났을 때 무엇이 판단을 흔들었는지 살펴볼 단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6만 원 손실’만 보면 사람은 손실액에 먼저 시선을 빼앗기기 쉽습니다. 그때 멈춘 이유는 사라지고, 다음에는 그 숫자를 줄여야겠다는 생각만 남을 수 있습니다.
숫자 옆에 긴 일기를 써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위의 가정이라면 ‘집중이 흐트러져 중단’ 또는 ‘처음 정한 기준에 따라 중단’ 정도만 있어도 나중에 읽는 의미가 달라집니다. 특히 기준을 바꾸고 싶었다면 바꾼 금액보다 바꾸고 싶어진 이유가 더 많은 것을 말해줄 때가 있습니다. 게임 상황이 달라진 것인지, 손실이 눈에 들어와 조급해진 것인지 정도는 구분해 볼 수 있으니까요.
반론도 가능합니다. 이유를 적는다고 정확한 기록이 되느냐는 겁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한 설명을 붙이기도 하고, 당시에는 몰랐던 감정을 나중에 알아차리기도 합니다. 숫자보다 말이 오히려 더 쉽게 기억을 꾸밀 수 있다는 지적은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판단의 기록이 변명인지 정답인지 증명하려 하기보다, 그 순간 자신이 어떤 근거를 붙잡고 있었는지 남기는 쪽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결과가 나온 뒤의 설명과 결정하기 전의 생각은 다릅니다. 둘을 같은 것으로 취급하면 기록은 과거를 보여주는 대신 과거를 다시 쓰게 됩니다.
물론 이유를 적어도 다음 판단이 좋아지거나 손실이 줄어든다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적어둔 한 줄은 적어도 이런 질문을 남깁니다. 그때 내가 바꾸려던 것은 기준이었을까요, 아니면 이미 나온 결과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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