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하게 떠오르는 판이 판단의 기준이 될 때
판단이 맞았는지를 보는 것과 맞았던 장면이 얼마나 선명하게 떠오르는지는 다른 일입니다. 전자는 지나간 판단을 고르게 살펴야 알 수 있지만, 후자는 한 장면만 강하게 남아도 충분하니까요. 그런데 머릿속에서는 이 둘이 쉽게 같은 말이 됩니다.
예를 들어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게임에서 어떤 흐름을 보고 다음 판을 예상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열 번 판단해서 세 번은 예상대로 됐고 일곱 번은 빗나갔습니다. 그중 한 번은 마음속으로 이유까지 또렷하게 붙였는데 결과도 맞았습니다. 나머지 두 번의 적중과 일곱 번의 실패는 별다른 인상 없이 지나갔다고 해보죠.
나중에 그날의 판단을 떠올리면 어떻게 될까요. 실제 가정 속 결과는 열 번 중 세 번이 맞은 것인데, 기억을 더듬는 첫 순간에는 이유까지 갖다 붙였던 그 한 판이 대표 장면처럼 나설 수 있습니다. ‘그때 흐름을 읽었잖아’라는 생각도 거기서 생길 테고요. 맞은 사실 자체는 틀리지 않습니다. 다만 한 번 맞았다는 사실에서 그 방식이 믿을 만하다는 결론까지 가려면, 기억에 덜 남은 아홉 번도 함께 봐야 합니다.
제가 흥미롭다고 느끼는 부분은 빗나간 판단을 일부러 감추지 않아도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틀린 판은 이유를 길게 설명할 틈도 없이 끝나기 쉽습니다. 반면 맞은 판은 결과가 나온 뒤에 앞뒤가 맞는 이야기로 엮기 좋습니다. 그때 보였던 장면과 마음속 예상, 실제 결과가 한 줄로 이어지면 판단 과정까지 단단했던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인상적인 적중을 기억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라는 반론도 가능합니다. 사람은 모든 순간을 같은 무게로 기억할 수 없고, 눈에 띄는 결과에서 무언가를 배우기도 하니까요. 저도 기억에 남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판단을 무가치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배울 만한 판단이었는지 따지는 일과 그 장면이 강하게 남았다는 사실은 구분해야 합니다. 결과가 나온 뒤에는 당시의 막연한 생각을 실제보다 분명한 예상으로 기억할 수도 있습니다. 맞았던 순간을 떠올릴 때, 그 예상이 결과 전에 얼마나 구체적이었는지, 비슷한 이유를 댄 다른 판단들은 어땠는지까지 생각해 보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죠.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맞은 판만 기억한다거나, 기록만 있으면 판단의 착각이 사라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 생각에는 적어도 선명한 기억 하나가 판단 전체를 대신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해 볼 여지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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